요즘 극장에 가선 무슨 영화를 볼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암살> 아니면 <미션 임파서블5>, 모 아니면 도다. 다른 영화는 특별히 볼만한게 없다. 충무로와 할리우드가 맞붙은 이 게임에서 진정 누가 승자가 될지 가늠하게 어렵다. 현재까진 <암살>이 상당히 앞서고 있지만 결과는 어떨지 두고볼 일이다. 여름 휴가에 이 두 편의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본전은 뽑을 듯하다. 돈이 아깝지 않게 잘 만든 영화들이다.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 최고의 시리즈물과 맞붙어서도 주눅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장족의 발전이다. 두 편 모두 삼복더위를 날려버릴 몰입과 재미를 선물한다.
시원시원한 액션으로 보자면 <미션임파서블5>가 낫다. 이번 시리즈에서 액션과 스토리의 기량은 제쳐두고, 여주인공 일사 역의 레베카 퍼거슨이란 배우의 발견은 수확이다. 하여, 영화흥행으로 보자면 이번에도 `미션 파서블'이다. 한국 최고의 배우들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암살>은 액션과 스케일 측면에선 약간 실망스럽다. 왜 감독들이 192,30년대 영화를 쉽게 만들지 못하는지 <암살>의 미쟝센을 보면 알 수 있을 듯하다. 나름 정교하고 꼼꼼한 무대와 의상, 분장을 선보였지만 스케일이 비좁다. 러닝타임 내내, 협소한 무대와 배우들의 동선에 답답함을 느꼈다. 부족한 제작비로 이 정도의 미쟝센을 구축한 것만도 칭찬해야 할까.
<암살>은 대한민국 대표 배우들의 집합소였다.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국가대표 축구팀으로 보자면 스트라이커 세 명이 전방에 출격해 서로 골을 넣겠다고 다투는 형국이다. 이들을 어떤 영화에 갔다놔도 그림과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배우들인거 관객들이 잘 안다. 최동훈 감독은 무려 9년간 <암살>의 시나리오를 고치고 지우고 다듬었단다. 9년이라면 그가 <타짜>, <도둑들> 같은 범죄 오락물을 만들 때이다. 그런 그가 이 영화에선 잊혀진 역사와 애국지사들의 활약상으로 급선회한다. <타짜>와 <도둑들>은 노름꾼과 도적들의 이야기다. 애국하고는 상관도 없다. 그는 갑자기 왜 1930년대 일본제국주의 시대로 날아갔을까.
상업 영화로서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 뭔가 의미있는 메세지와 기억을 선물하는 방법은 상업영화 감독들이 역사를 다루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최동훈 감독도 그런 점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암살>은 일제 시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위원 김구의 <한인애국단>과 약산 김원봉이 조직한 <의열단>이 연합해, 조선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 강인국을 암살한다는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있다. 최동훈 감독은 영화 <도둑들>을 `케이퍼무비'로 만들며 톡톡한 재미를 봤다. <암살>에서 그는 또다시 걸출한 암살자들을 불러 모으며 <도둑들>의 영광를 재현하려 든다.
이런 시도는 일단 `성공적'이다. 한국독립군 저격수 출신 안옥윤 역의 전지현은 장총의 조준경을 침략자와 친일파의 심장에 겨눈다. 그간 전지현의 곱상하고 섹시하며 단정한 모습만을 봐왔던 관객들에게도 장총 든 전지현의 의기에 찬 표정은 설득력있고 매력적이다.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를 연기한 조진웅의 코믹 연기 덕분에 극의 장엄미가 더해진 것은 어떤가. 폭탄 전문가 황덕삼 역할을 소화한 최덕문은 방금 역사책을 박차고 튀어나온 듯 소탈하다. 변절자 염석진으로 화한 이정재는 언제 저 배우에게 저런 `니글니글한' 맛이 있었던가 눈을 의심케하고, 하와이 피스톨로 돈을 쫓다 회심한 하정우와 오달수에게서 관객은 `닭살돋지 않는 진짜 의리'의 풍경을 관측할 것이다.
<암살>은 흥행에 성공할 것 같다. 감독이 한국 영화의 대표주자들을 모두 끌어모으고, 아무리 찾아봐도 비극과 엄숙미 밖에 보이질 않는 역사에다 유머와 재미라는 단 맛을 덧입힌 것은 그런 의지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영화속에서 역사에 주목한 관객들에겐 적지 않은 소득이 있다. 바로 감추어진 영웅을 저 잊혀진 역사안에서 되찾아 오는데 이 영화가 의도하든 안하든,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다. 일제 시대, 일본정부가 최고의 몸값을 내걸어서라도 기필코 잡아 처단하고 싶어했던 인물, 한국 독립운동의 상징 김구보다 더 많은 현상금을 목에 걸었던 남자, 약산 김원봉이다.
김원봉은 일제 시대 일본을 향해 가장 강력한 무장투쟁에 앞장섰던 독립운동가였다. 일본의 요인암살, 일제 수탈 기관 파괴 등, 말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독립을 쟁취하고자 노력한 사람이었다. 그런 애국지사가 해방 70년이 된 지금, 남과 북 어느 쪽에서도 중요한 인물로 기억되지 않는다. 좌, 우를 넘나드는 그의 투쟁노선 때문이었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와 싸우기 위해, 이념보다 협력과 연대를 강조했다. 이념에 앞서 민족을 선택한 것이다. 고등계 형사, 친일파였다 해방 후, 헌병으로 변신하고 국회의원까지 출마했던 노덕술 같은 친일경찰에게 끌려가 뺨까지 맞는 수모끝에, 그는 결국 북으로 넘어갔고 북에서조차 김일성에게 숙청당하는 불운을 맞이했다.
영화속 일본 앞잡이가 된 변절자 염석진은 안옥윤의 심판을 받고 절명한다. 오락 영화다운 발상이다. 더운 여름 극장가를 찾은 관객들이 악당을 남겨두고 객석을 떠나는 찜찜한 여운을 남겨선 안 된다는 걸 감독은 알아챘다. 허구를 가미한 영화가 주는 카타르시스다. 그런데, 그 날, 뉴스는 모 인사의 친일 발언을 탑으로 내걸었다. "일본인의 신사참배에 배놔라 감놔라 하는 것은 내정 간섭이고 부당한 일", "한국 위안부 문제에 일본 정부 사과 요구는 이미 끝난 일" 이 말이 누구 입에서 나왔는지는 뉴스를 찾아보시라. 묻고 싶다. 김원봉이 목숨 걸고 항일 투쟁을 할 때, 당신 조상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계셨느냐고? 피는 못속인다는 한국 속담은 정확한가.
<암살>은 디테일이 살아 있고 부족하지만 나름의 미쟝센에 공을 들인 작품이다. 최고의 배우들을 끌어모으고 수십번 고치고 다듬은 시나리오로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 안중근도 모르는 초등학생이 부지기수인데, 약산 김원봉을 아는 이들은 얼마나 될 것인가. 우리 시대 만들어지는 충무로의 영화들은 재미와 교훈, 교육의 역할까지 도맡는다. 한국 영화만의 독특한 풍경이다. 하나의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비평적 관점은 다를 수밖에 없다. 달라야 정상이다. 그러나 친일파를 애국지사로, 독재자를 휴머니스트로 포장해선 곤란하다. 영화 <암살>은 비교적 치우침 없이 역사를 다룬다. 그곳에서 우리는 잊혀진 역사 속 감추어진 영웅 한 명과 조우한다. 영화 한 편이 말 많은 역사교과서보다 낫다.
개츠비의 영화읽기 67
출처 : 개츠비의 독서일기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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